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2. 25. 09:55

나로선 이 공연장이 벌써 두번째...
제목이 "체크메이트" 였던 지난 공연. 대학로 공연장이 있는 곳에서는 좀 떨어진... 로타리 근처 허름한 빌딩 지하.
계단 내려가면 바로 있는 공연장. 그래서 줄서있을 공간도 없어 길거리에 서있어야 하는 단촐함.
그렇지만, 찾는 사람도 별로 없는 실험극 같은것만 주로 하기에, 딱히 줄설 필요도 없고, 공연장이 크지도 않기에 늦게 들어가 어디에 앉아도 배우가 잘보이는 허무함-고로 좀 불편하다는 거-

표를 예매했을때는 그저 일반적인 연극인줄 알았다.
전처럼 좀 일찍 도착해서 표을 찾고 극장앞 커피가게에 들어가 느긋하게 커피를 마신다.
시간이 가까워와도 관객들의 모습은 그리 많지 않아 오늘은 좀 편하게 보겠구나 생각한다.
전에 왔을때 힘들었던 기억때문에 관객이 없는게 오히려 더 고마워진다.

시간 맞춰 입장하려 극장앞에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들리는 공연관계자들의 얘기에 난 충격 먹었다.
"중간 쉬는 시간에 가는 사람이 몇명 없더라, 3시간이나 하는데 다들 잘 참더라"
난 이 연극이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는지 몰랐다. 더구나 3시간 짜리라니...
만원인데 3시간 공연이니 땡잡았다는 생각보다는 이거 장난 아니겠네 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든다.
나도 공연을 좀 봤다면 본사람이라 그럴리는 없지만 "나도 중간에 나가게 되는거 아냐?" -몸을 봐서 알겠지만 좁은 곳에 있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라는 걱정이 자동으로 든다.

연극은 시작됐다.
뭔 얘기인지 사전 지식이 없이 간 탓에 첨엔 적응하기 힘들다. 그래도 자리를 잘 잡은 탓에 좀 편하게 보나 했는데... 이건 웬걸 맨 앞자리에 그리고 정가운데 앉은 탓에 연기자들이 바로 내 앞에서 대사를 친다. 게다가 양은장수(?)는 내 앞에서 지퍼를 내려 오줌을 싸네... 리얼하게... 허걱...

좀 지나니 대충 어떤 얘긴지 알겠다. 그리고 연기자들이 어디서 본 얼굴들이다.
그렇다 그들은 내가 이 극장에서 전에 본 "체크메이트" 에 나왔던 사람들. 시작하자마자 내 앞에서 오줌을 싼 사람은 바로 작가 역할을 한 사람-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이 극장은 같은 극단이 계속 공연장을 사용하나 보다.
그중 한사람 똥푸는 아저씨도 "체크메이트"에서 나온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와이프와 상의한 결과 그 사람은 "연애얘기아님"에 나왔던 남자 주인공으로 판명됐다.-이것 역시 정확한지 모름.

이야기는 이렇다.
서울의 어느 산동네. 집주인 장석조씨네 집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들의 고단한 삶의 얘기다.
각각의 세입자들의 얘기를 에피소드 별로 구성했다-좀 산만한 느낌
각 에피소드는 그리 길지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 긴 러닝타임을 가지는 이유는... 산동네 작은 쪽방집엔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만들긴 했지만 삶이 힘들어 안타까운 우리의 부모세대 이야기...

끝나고 원작소설을 극장 입구에서 샀다. 연극이 재미있어서 원작을 보고 싶은 마음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대충 제목을 보니, 아쉽게도 연극에는 원작소설에 있는 두 세입자의 얘기가 나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왕 이렇게 길게 갈꺼면 나머지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아쉽다.

참 중간 쉬는 시간에 커피를 무료로 준다. 십몇만원씩 하는 뮤지컬에서도 주지않는데. 1만원임에도 커피까지 주다니. 너무 행복하다. 예기치 않은 대어를 낚은 느낌...